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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적으로 보고 싶엉


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그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치스러운 감정이지만 일상의 한 부분이라 습관적으로, 관성적으로.

엑소엠이 먼저 예정되어 있던 스케줄을 시작했고, 나는 이 친구들이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본다.

어그러진 균형에는 체념한다. 엑소케이 무대 좀 못 보면 어때. 심심한 유감과 허무를 목구멍으로 집어 넣으면 그만이다.

그건 망쳐진 세계를 중심으로 파동이 일어 아주 아주 먼 곳에 도달한 균열일 뿐이지. 정말 망쳐진 것에 비하면야.

폐허가 된 진원지를 보며 다들 어쩔 줄 몰라 한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을 본 사람도 어쩔 줄 모르고

죄다 어딘가에 금이 가서는, 그 금을 밟으면 안 되는 상태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그러나 그런대로 평범하게 말이지.

어지간해서는 그런대로 살아져. 희로애락 어디에 치우치든 결과적으로 익숙해진다.

참담한 와중에도 그런대로, 환희의 나날 속에서도 그런대로. 간혹 거기서 오는 위화감이 마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너무 슬픈 내가 무덤덤하게 살다가 엎어지고, 너무 행복한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살다가 거꾸러진달까.

솔직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슬프면 스며들게 문지르고, 행복하면 꼬집어 꿈인지 생신지 확인하고.

감정도 마사지가 필요해. 것도 자주.

솔직히 그냥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