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의 강우
장재열의 강우이기도 하지만, 도경수의 강우이기도 하다. 경수와 강우는 거대한 교집합을 공유한다. 그리고 내 강우다!! 너는 분명 내 극장에 있었다니까?
데뷔초 경수를 보며 장국영의 청춘을 떠올렸다. 작은 체구와 정적인 심성, 밀도 높은 눈빛에서
좋아하는 배우를 겹쳐 보기도 했다. 배우인 그 애를 상상하는 건 쉬웠다. 오늘 TV화면 속 강우는 데자뷰였다.
2012년 언젠가 어느 날에 나는 가로가 긴 사각형을 생각했고, 사각형을 둘러싼 어둠을 상상했다.
시작하며 좁아지는 스크린, 눈 아리게 빛 가득, 극장은 어둠, 서늘한 극장과 스크린을 덥히는 늦봄, 여름.
적갈색으로 일렁이는 눈이 먼저 들어온다. 이랬어요, 저랬어요. 정말, 정말요. 2014 버전으로 '작가님.'
꾸밈없이 흙땅으로 툭 떨어지는 말투, 그 애의 목소리와 부드러운 몸선이 들어온다.
차례로 떠올리면서도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날 거라 생각지 못했다.
내 상상은 견고했다. 2012년 봄과 여름, 경수에게서 얻은 소스를 다 꺼내서 그린 걸작이었다. 그대로가 완성이었다.
경수가 언제고 연기를 하게 된다면 어그러질, 멸종위기의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경수는 50보다 많은 확률로 내 극장의 비상구를 열어버리겠지.'
이상의 미래는 퍽 터지고 쭈그러들어 현실에 착 달라붙는 껍데기니까. 짝짝 씹어 단물 빠지고 질겅이는 고무니까.
지나치게 달고, 부풀어 오른 것이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와 조금 평범해진 채 얼굴을 내밀 것이었다. '미래를 굽어보는' 내 안테나의 예언으로는
120일줄 ㅠㅠ 몰랐지. 70이나 80 정도 그리고 내 열렬한 사랑과 응원 10 더해서 팔구십이면 2012년 봄과 여름 (걸작의 소스) 경수는 기념비적이라고.
강우를 보면 서럽다. 드라마에서 강우는 장재열의 세계에만 사는 환시인데, 강우는 내 세계에 살던 달고 부풀어오른 경수랑 닮았따.
서럽게 울음을 참는 것까지 똑 닮았단 말이지. 어쩌면 2012년은 강우에게 잡아먹혔을지 모르겠다. 없어진 것에 대한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오늘 드라마를 보는데 이번 화 마지막 대사를 읊는 경수의 붉은 눈 언저리에 봄과 여름의 흔적이 보였다. 분명 삼킨 것이다. 경수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도경수, 도경수하던 사람들 세계에 뜌벅뚜박 들어가 극장 뚜껑을 하나 하나 열더니, 걸작을 다 집어 삼켜따.
2012, 봄, 여름, 그때 빛과 바람, 아름다운 것을 다 집어 먹고 120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런 꿈을 꾼 것이 나 하나 뿐이겠어? 대단한 것은 경수의 집중력이다.
그 집중력이 이상형이다 ㅜㅜ 시청자는 강우를 봤겠지만, 팬에게는 더 여러 가지가 보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런 꿈을 꾸었으므로, 경수에게 삼켜진 2012년을 생각한다. 2012년처럼 강우가 사라지려 한다. 눈두덩 뜨거어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