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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온실

글썽 2018. 10. 19. 13:41

한가로운 금요일 낮이야. 하늘은 잘 닦은 유리처럼 맑고, 나는 연차 쓰고 블루스퀘어 2층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일 낮공연은 꿈처럼 행복하네. 오전에 치과 다녀와서 기분 망칠까봐 걱정했단 말이지. 샌드위치 먹다가 몇번 치아인지가 똑 뿌러졌다. 어떻게 왜 도대체 샌드위치 먹다가 이가 나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 동네치과 가서 자신은 없지만, 해보겠으나, 돈은 이만큼 드는데 할래말래 식의 응대를 받고 너무 걱정스러웠다. 대학병원치과 예약했는데, 잘한 것 같아. 평이하고 무관심하며 친절하고도 명확한 말투의 똑또기 의사쌤이 어떤 상태고, 어떻게 진행하겠습니다. 보철물 이런이런걸로 하면 가격은 이만큼쯤 들겠고요. 그럼 이 날 뵐게요. 하고 깔끔하게 나오니까 얼마나 상쾌해. 또 백얼마 깨지게 됐지만, 돈이야 순리대로 빠빠이 하는 거고 마음 편한게 제일 좋아.

나 자신조차 안 궁금한 이빨 뿌서진 얘기는 그만, 웃는남자 보러 왔으니까 웃는남자 얘기하자. 웃는남자 생각하면 쓸쓸해지네. 세 번 남았네. 오늘이 끝나면 단 두 번, 세상에서 두 번 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10월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겠지. 처음 캐스팅 소식 들었을 때만 해도, 이 공연이 이다지 소중하고 아쉬워질 줄 몰랐떠. 팬질의 끈을 느슨하게 잡고, 평범한 기대를 품은 채 공연을 보러 갔지. 한 눈에 반해 사로잡히는 형태의 사랑이 아니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내 맘 속 김준면 초 인기멤이니까 한 번 더 보고, 네 번 보고, 다섯 번 보고, 여섯 번 보고, 일곱 번 보고, 열 아홉번 보고, 오늘로 스무 번 째. 언제 어느 순간 사랑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게, 만족과 갈증이 앞다투어 선을 침범하는 모순을 느끼면서, 내가 안 본 회차에서 레전드 찍었다는 후기에 안절부절하며 진짜인가 사실인가 궁금해하면서, 의심하면서, 납득하면서, 내 관극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공연을 보고 온 귀가길에 터져서 넘치는 마음을 애써 정리하면서, 사랑의 새로운 모델을 인정했다. 그의 열정은 햇살 내리쬐는 맑은 날 오후 유리 온실에서 자라는 꽃과 풀, 나는 유리 온실을 스무바퀴 째 맴돌며 꽃과 사랑에 빠진 사람, 풀과 사랑에 빠진 관객. 어느 날 돌연 완벽한 컨셉, 완성된 무대를 보여주는 것도 나를 미치게 사랑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는데, 라이브로 성장기를 보는 건 마치 모험을 하는 것 같아. 성공으로 빛으로 향하는 스펙터클한 모험기 속에 초대된 듯 설렜다.

아 좀 추운데. 뒤는 공연 보고, 감성에 푹 쩌들어서 중국팬들이 요 아래층 카페에서 한다는 이벤트 컵홀더 겟하고 계속하쟈. 오늘은 금요일이고, 내일은 토요일이고, 내일 모래는 일요일이니깐.      

오늘 데려온 며이토끼 새침떼기 예뿌닝
 

 

+

이날 정말 행복했찌. 며니플렌 컨디션도 좋았고, 내 컨디션도 좋았다.(행복과다) 특히 '그 눈을 떠'는 숨막힐 정도로 잘했어. 그 떨림이 전율이었는지, 배고픈데 너무 놀라서 떨린 것인지 헷갈리지만 매우 흥분한 상태가 웃는남자까지 이어졌다. 그눈을떠 확실히 옛날이랑 느낌이 달라. 관극 초반에는 이 넘버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거든. 다음에 이어지는 웃는남자 정또 흑화의 임팩트가 너무 컸기도 했고, 성스럽고 가련하기로는 최고였지만 어쩐지 혁명가 치곤 연약한 느낌이었단 말이야.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가. 고음에 정확하게 안착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노력과, 저음에서의 상대적 편안함? 지나고 나면 며니플렌의 강점인 청초한 미성만 귓가에 멤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의로움이 +++ 되기 시작해떠. 고음에서의 고생스러움도 단기 속성으로 개선된 듯 했고, 저음에서의 편안함을 힘있는 발성과 정의 사도가 내려온 듯 혁명가의 연기로 치환시킨 느낌. 그렇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더니, 1019에 와서는 떨림을 자아내는 최애 넘버가 되었다. 숨죽이고 듣다가 내 기준 무결점으로 넘버를 완벽히 소화하자, 열기를 실은 흥분이 목뒤에서 확 치달아서 나도 모르게 환호를 하게 되었는데, 타이밍이 아니었는지 ㅋㅋㅋ 나만 작게 호~! 하고 웃는남자로 넘어가서 쫌 민망했다 ㅋㅋㅋㅋ 그치만 나는 진짜 완벽하다고 느꼈는데... 진짜, 진짜였다.


면윈플렌의 웃는남자가 세상에 두 번 밖에 없다니, 슬프다. 물론 너무나 사랑하는 엑소로 컴백하지만, 영화처럼 기록 영상이 아니니까.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이 마음을 어떻게 삭여야 할까? 의연하게 보내줄 수 있을까.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제 보내줘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