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남자, 마스터피스 (ㅅㅍㅈㅇ)
김준면 풀 아니야? 이건 사람의 생장 속도가 아니다. 엄청난 성장캐야. 아침에 연두색 싹을 톡 틔우고, 몇 밤 자면 키가 쑥 크고, 계절이 바뀌면 화라락 꽃을 피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라기 위해 애쓰는 나의 사랑스러운 풀. 나는 새싹 한 번, 풀 한 번, 꽃 한 번 봤을 뿐이지.
오늘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시야와 음향, 내 배우의 유려한 생김과 날렵한 몸, 음색, 성량, 발음, 심지어 앞뒤옆 관객의 관극 태도까지 싹 다 펄펙. 예술의 전당 시야는 망원경만 있으면 어디든 나쁘지 않는데, 음향은 층별로 차이가 크더라. 3, 4층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1층으로 컴백해보니 음향이 천지개벽할 수준으로 달랐다. 확 트인 시야에, 짱짱한 음향에 며니플렌이 노래까지 똑 떨어지게 잘하니까, 시간 흐르는 게 아까웠다. 막이 내리자, 슬펐다. 팬여러분은 준면이가 너무 잘해서 감동이라고 울던데, 비슷한 맥락이지만 오늘 공연 고대로 블루레이로 갖고 싶어서 눈물 날라 그래떠.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게 없었다. 아 하나, 내 욕심을 버려야 해. 욕심 때문에 괴롭다. 그윈플렌과 다시 만날려면 한 달 기다려야하는 거 진짜냐구ㅜㅜㅜㅜ 내가 잘못했어. 이 공연을 너무 사랑하게 된 거야. 아쉬움을 달랠 방법이 없어서, 명절 전 주말 공연까지 추가 예매했다. 그 주에 회사 성수기여서 주말에 출근할 수도 있는ㄷ, 아 몰라ㅋㅋㅋㅋㅋ 토요일에 추가 근무가 없기를 바라야지.
오늘 내가 사랑하는 넘버들 전부 대박적이었다. 한치의 헷갈림 없이 쭉 잘하는 바람에 놀래가지구 인터미션 때 옆 사람한테 말 시켜버림. 준면이 지금까지 중에 제일 잘한 것 같지 않냐고. 아니 내가 안 본 회차에서 더 잘했을 수도 있고, 옆 사람이 처음 관극일 수도 있는데 이 무슨 민폐지ㅋㅋㅋㅋ 흥분해서 이상한 자신감이 생겨버렸다. 오 그러냐고, 처음 보는 거라고 하셔서ㅋㅋㅋㅋ 아... 네 제가 봤을 땐 제일 잘해가지구요로 쭈굴쭈굴 마무리했다.
사랑하는 넘버들 이야기 해보까. 나와 닮은 사람, 조시아나와의 듀엣에서 몇 번 왔다갔다 했었자나. 조시아나를 받쳐주는 화음이 예술적으로 어우러진 완제품을 받았다. 전에는 따라갔다 안 따라갔다 해서, 예쁜 제품이긴한데 조립해서 쓰라고 부품을 냅다 주고 간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완충 포장에 꼬까 리본까지 둘러서 줬다. 어제도 좋았지만, 오늘이 더 예뽀. 내 취향엔 정시아나가 맞는 것 같다. 우아하고 도도해. 신시아나도 우아하지만 준면이를 우쮸쮸 귀여워하는 게 확 느껴져셔 비정한 귀족으로 안 보여 ㅋㅋㅋ 마음씨 좋고 예뿐 누나 같다구.
나와 닮은 사람에서 can it be 로 이어지는 매혹적인 감정선을 사랑한다. 준면이가 본래 가진 강점을 잘 보여주는 넘버라고 생각해.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 돋보이는 아름다운 얼굴과 붉은 상처가 주는 가련한 감성. 그 얼굴에 걸맞게 여리고 섬세한 목소리.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그래도 될까. 욕망의 빗장을 조금은 풀어도 될까. 상처투성이 내 영혼도 언젠가 세상에 안겨 쉴 수 있을까. 예전에 준면이가 팬미팅에서 ‘사랑에 빠지고 싶다’ 불렀잖아. 캔잇비 듣고 있으면 그때처럼 감정이입돼서 혼란스럽다. 준면이가 평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릿속을 털어볼 순 없지만, 결코 단순하진 않을 것 같다. 고뇌에 찬 노랫말에 자신을 잘 입힌다. 그윈플렌인데 준면이 같기도 해서 마음이 끌린다.
행복할 권리. 좀 더 깊게, 조금만 더 깊게. 본질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시험적으로 파고들어 연기를 완성시키는 과정이 보인다. 아부지와 싸우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주저앉히고 굴복시키려는 세상에 분노한다. 분노를 쫌 더 해도 되나? 조금 더 세게? 그래서 오늘은 반항기가 완연하게 흐르는 것이 아주 물이 올랐떠요. 우리 준면이 청소년 시절에 부모님께 허락 받고 찜질방으로 가출했던 친구였는데 언제 이렇게 프로반항러가 됐찌? 그 얘기를 종인이가 라디오에서 조잘조잘 일러바칠 때만해도 애깅이들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왜 바르고 착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섹시가이잖아ㅋㅋㅋㅋㅋㅋ 이런 성장캐. 좋다.
그 눈을 떠~ 웃는놈. 뜬금없지만 내 최애 히어로는 베트맨이야. 범죄 소굴인 고담시를 지키겠다고 진창에서 구르는 만신창이 히어로. 정의를 관철시키는 불굴의 정신이 있으나, 혁명가의 기질은 언제나 좌절되며 비극적 운명으로 가는 길을 앞당긴다. 프로그램북 보니까 다크나이트 조커의 찢어진 입이 그윈플렌에서 유래했다는데, 그윈플렌은 베트맨의 정의로움과 조커의 또래이 기질을 뒤섞은 캐릭터다. 취향 제대로 저격해서 헤어나올 수 없어. 준면이는 작품 선택하는 눈이 대단하네. 어떻게 황태자 루돌프에 이어서 그윈플렌을 딱똑딱 선택했을까? 자기 객관화가 너무 잘 되는 거 아니냐.
며니플렌은 ‘그 눈을 떠’를 부를 때 가사와 연기의 싱크로율을 딱 맞춘다. ‘경들, 나 여기 진실을 외칩니다. 간청드리고, 연민에 호소하오.’ 이 가사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준면이가 리얼 두 손을 기도하듯 곱게 모으고, 눈빛은 집 지키는 강아지처럼 착하게 하고서 을나부랭이가 갑님에게 간청드리고 호소하듯 연기하거든. 가사를 흥얼거리면 예쁜 얼굴과 다소곳한 폼이 떠오른다. 며니플렌이 이토록 예의바르게 호소했건만, 돌아온 건 비웃음과 조롱 뿐이야. 혁명가의 4분 천하가 막을 내리고, 정의롭지만 자기파괴적인 빌런이 등장한다. (응 정의로운 또라이 나왔써) 웃는놈 시작.
지금부터 4분동안 지옥행 티켓 끊어서 너희들을 아주 멀리 보내버릴 거야. 저승사자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지독하게 몰아세웠다. 얼마나 격하게 연기했으면, 상원 의상 훌훌 벗고, 조시아나에게 난 관심 없어 할 때까지 숨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무대 라이브도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편인 준면이가 이렇게까지 격하게 숨 몰아쉬는 건 드문데. 숨이 턱 끝까지 차는데도, 이어지는 노래에 영향이 안 가. 오히려 연기적으로는 좋았다. 숨이 차든 꼴깍 넘어가든 근성으로다가 격한 감정선을 최후까지 끌고 간다. 매달고 즐기지ㅡ이ㅡ이ㅡ 다음에 숨 크게 쉴 구멍도 없이 바로 이어져. 오케스트라 반주를 밀면서 엇박으로 내 목도 졸라 봐, 벌레만도 못해 웃는 놈. 와아 현실 감탄사 나왔자나ㅋㅋㅋㅋ 미쳤네. 칼 갈았네. 칼 갈았어.
허나 삶의 끝이 여기가 아님에, 감사하는 내가 최후의 웃는ㅡㅡㅡㅡ 남자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 여기까지만 하고 준면이가, 자 웃는남자 끝났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해도 할말 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공하는 사람이 왜 성공하는지 쫌 알겠다. 근성이 미쳤다. 예당 막공이라면 이제 내 패를 다 까겠습니다. 그리고 존나 잘해버려. 무섭고, 멋있다.
온 힘을 다 해, 어제 오늘 세 번 연속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준면이는 커튼콜 때 표정이 찡글찡글, 눈이 찰랑찰랑, 울망울망하는 순간을 오케스트라 지휘자 소개로 애써 모면했다. 준면이 정말 장하네. 4층까지 가득 채운 관객의 기립박수와 환호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알 수 없지만, 너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
후기 거의 다 썼다가, 페이지 뒤로가기 눌러서ㅋㅋㅋㅋㅋㅋ 다 날려먹었따. 망연자실해서 안 쓸려다가 그래도 이런 만족스러운 공연을 봤으면 기록을 해야지 싶어서 꾸역꾸역 기억 되살려서 다시 씀ㅜㅜ 처음 쓴 거는 되게 사랑스러운 투였는데, 새로 쓴 건 쫌 시니컬해. 내 멍청함에 대한 짜증과 준면이에 대한 애정이 적절히 버무려졌찌♡ 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