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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남자, 박효신 (스포주의)

글썽 2018. 8. 12. 22:40


미천한 엑소팬의 후기임을 알려두며.


다른 그윈플렌은 어떤가 싶어서 믿듣 믿보 뮤지컬대스타 박효신 배우님 공연을 보러갔다. 와, 나 뮤지렁이 치고는 엄청난 학구열로, 두뇌풀가동하면서 들이파듯이 감상함. 아무 생각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갔는데, 예당 로비에 발 딛자마자 '걔넨 그냥 팬심으로 보러 오는 거잖아.' 라며 까는 걸 들었넹. 빈정 확 상하게ㅋㅋㅋㅋ 어 그래 영 틀린말은 아닌데, 그래도 니네한테 비웃음 살만큼 기만적으로 팬질하진 않거든. 보고 듣기에 별루면 입 딱 다물지, n차 찍어가며 구라로 잘한다 잘한다 하겠니. 속으로 삼키고, 쓰게 웃었다. 오냐 그렇게 오만하게 내뱉고 다녀도 될만큼 니네 가수 노래 잘하는 건 맞으니깐, 더 해라 더 해.

더 웃긴 건, 엘리베이터 탈려니까 어떤 고상한 시어머니 시아부지 아들 며느리가 대화를 하는데, 시어머니왈 저번에 본 **뮤지컬은 정말 귀가 아프더라 얘. 끝에 나온 성악은 썩 괜찮았지만. 뮤지컬배우들은 다 그렇게 이상한 발성으로 노래하는 거니? 이번엔 괜찮을라나 몰라. 이러고 있음ㅋㅋㅋㅋㅋㅋ 카스트제도야 뭐야. 불가촉천민인 아이돌팬은 머라 할 말이 없습니다요. 빈정 상한 채 들어간 것 치고, 공연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래서 박효신박효신 하는구나. 확신의 한 음 한 음. 정확하고 안정적이며 이건가 저건가 아리까리한 순간이 0에 수렴하는데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가 정답보다 더 좋은 답이라는 확신에 차있다. 성량은 예당 바닥을 깊숙히 판 다음에 천장으로 쏘아올리고도 좀 남는다. 다른 배우들과 비교해 규격화된 뮤지컬배우의 발성이나 창법은 아닌 것 같았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을만큼 뛰어난 가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극 안에서는 며니플렌도 강점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야. 특히 음색 면에서 그렇다. 그윈플렌은 순수와 관능을 오가는 이중적인 캐릭터잖아. 이걸 표현하기에 청량함과 가련함이 돋보이는 미성이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봐. 가령 쿄윈플렌과 우르수스의 듀엣에서는 육중한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듯, 두 배우가 깔려죽을만치 무겁게 한 음 한 음을 짚고 간다. 그 진중한 하모니에 시간마저 느려지는 것만 같았다. 젊고 순수한 패기보다, 오랜 장인의 노련함이 묻어난다. 물론 듣기에 매우 좋았지만, 며니플렌 다섯 번 듣고 쿄윈플렌 한 번 들은 나에게 어떤 가능성을 느끼게 했다.

캐릭터 분석이 섬세했다. 고심한 끝에 통일된 행동양식을 갖춘 것이 느껴졌다. 며니플렌에 비해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이 있다. 장단점이라기보다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며니플렌은 우르수스와 데아로 이루어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불우한 과거를 일부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웃는남자, 비천한 괴물. 스위치 켜지면 트라우마가 발동한다. 반면 쿄윈플렌은 콤프라치코스로 인해 망가져버린 1차적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예민한 성격으로 연기톤에 시종일관 옅은 비굴함과 두려움이 묻어난다.

다른 배우와의 장면에서도 방어적인 동작이 많다. 조시아나는 물론 우르수스, 심지어 페드로를 상대하며 팔을 휘젓고 손을 떠는 식으로 히스테릭하게 반응한다. 같은 비천한 광대여도 며니플렌이 '비천함'보다 '광대'에 초점을 맞추고 우아하고 곱상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과 대비된다. 데아를 제외한 모두를 기본적으로는 두려워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확실히 그는 며니플렌보다 '더' 상처받은 그윈플렌이다.
며니플렌이 외향적이라면, 쿄윈플렌은 내면에 완전히 몰입한다. 그로 인해서 기이한 관능이 느껴진다. 다만 과몰입에도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가벼운 상황에서도 집요하게 자신의 닫힌 세계로 관객을 끌고가려 한다. 팀버튼 감독의 '가위손'에 나오는 에드워드처럼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비상식적인 생활양식에 함몰된 인물을 만날 때 우리는 조금 더 그의 입장을 고려해야만 한다. 극적인 순간에는 그게 하나의 재미로 느껴지지만, 계속해서 꿈꾸듯이 말하고 가위손을 철컥철컥한다면? 그를 깊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걸음의 느림과 빠름에도 임팩트가 있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갈 때, 어둠에서는 탱고처럼 빠르고 빛에서는 왈츠처럼 느긋하다. 구태여 춤에 빗댄 것은 그 빠름과 느림에도 리듬이 감겨있어서. 어둠은 책으로 말하자면 여백 공간으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장면을 전환하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어둠에서 빠르게 벗어나 빛에 닿으면서부터 느긋한 걸음으로 성큼 걸어서 존재를 환기시킨다. 동작의 크고 작음 때문일까? 돌이켜 보면 준면이도 그런 식으로 움직인 것 같은데 보폭이 비교적 작고 가벼워서인지 극적 효과가 덜했던 것 같다.
빛과 동작을 맞추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빛과 소리의 싱크로율도 맞춘다. 마지막 장에서 핀조명이 그윈플렌을 강하게 비추었다가 서서히 사그라드는데, 빛이 강하게 내릴 때 소리는 거침없이 뻗어나가고, 빛이 약해짐에 따라 소리도 옅어진다. 빛과 소리의 명멸이 운명을 같이하는 장면은 절묘했다. 결국 모든 효과를 고려해서 움직이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윈플렌과 데아 이별 장면. 여기서 괜찮은 힌트를 얻었다. 전에 내가 이 장면에서 며니플렌의 슬픔이 깊게 와닿지 않는다고 했었거든. 무표정이 상실을 완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걸로 보인다고. 그거 쿄윈플렌의 표정까진 못봤지만(4층에서 망원경 없이 봄), 슬픔과 두려움이 녹아든 불규칙한 숨소리로 되게 쉽게 표현하더라. 심지어 슬프게 헐떡거리다가 거의 울어버림. 잘못 훌쩍거렸다가는 슬픔이 반감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쿄윈플렌은 잘하심) 그 처연한 헐떡임, 두려움에 찬 숨소리는 쓸만한 스킬이 아닌가 싶었다.


근데 있자나 웃는놈에서 며니플렌이 꺾는 춤추는 거ㅋㅋㅋㅋ 며니플렌만 하는 고야? 쿄윈은 안 하대ㅋㅋㅋㅋ

그거 기괴하고 멋있고 난리나는데. 뭔가 준면이 애드립으로 했던 건가 싶어서 뿌듯했뜸.

야~ 참~ 유익했다. 여기 이 장면, 저기 저 장면에서 준면이는 어떻게 했었는지 따져보느라 머리가 뜨거워지는 시간이었다. 너무 집중해서 봤어... 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근데 준면이도 다른 배우들 같은 역할 하는 거 봤을까? 봐도 좋을 것 같고, 안 봐도 좋을 것 같다. 보면 그 배우에게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이 보여서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잘 잡아온 중심을 잃을 수도 있겠다. 준면이 지금 진짜 잘하고 있거든.

아 내일 월요일이야. 출근하기 싫다.